4) 인적 연망을 보여주는 자료들 ?

그러나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여전히 군 정보참모부의 정보수집활동은 주목을 요하는 자료군이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미8군 정보참모부의 문서철들 중 아직 입수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해방직후 미군정시기에 비해 한국전쟁 발발 이후의 야전군 정보참모부의 상대적 중요성은 아무래도 떨어진다고 하겠다. 정부수립 후 한국전쟁 발발 그리고 전쟁 종료 이후의 시기에 걸쳐 방대하게 존재하는 문서들로는 주한미군사고문단 부관부 문서(KMAG, Adjutant General), 미8군 문서(Records of Eighth Army), UNCACK(UN Civil Assistant Command, Korea), KACK(Korean Civil Assistance Command), Korean Communications Zone자료(Korean Communications Zone, 1952-53)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한국관련 문서들은 주로 RG 554(극동군 최고사령부, 연합국 최고사령부, 유엔군사령부-Records of General Headquarters, Far East Command, Supreme Commander Allied Powers, and United Nations Command)로 이관되었다. 이들 원조 기관 내에서 대한 원조를 담당하는 부서는 ECA의 한국 프로그램과(Division of Korea Program)에서 MSA의 극동 프로그램과(Far East Program Division)을 거쳐 FOA와 ICA의 극동 사업국(Office of Far Eastern Operations)로 바뀌었다. 국무부 차관보는 일본에 대한 연합국의 점령정책을 주조했던 극동위원회(Far Eastern Commission)와 미 정부당국간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신 채널이었다.

국무부 차관보는 국무부-전쟁부-해군부 삼부조정위원회(SWNCC)에 국무부 대표로 참석했으며, 후에는 미국의 전후정책 일반, 특히 점령정책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삼부조정위원회의 영구의장직을 수행했다. 해방 후에는 1960년부터 1967년까지 구즉국민학교를 졸업한 강범석 외 3인의 상장과 졸업장 24점이 포함되어 있다. 또 정안면 서장석은 형제들의 학교기록(상장, 졸업장, 성적통지표, 졸업장)과 위촉장, 일기자료 등이 있다. 1743)이 宋時烈과 宋浚吉의 문묘종사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는 것이 주목된다. 아울러 소재 파악을 하고도 소장자 연락 두절, 소장자 해외 여행, 소장자의 공개 거부 등으로 미처 조사하지 못한 것이 있다. 로 공개·정리되어 있다. 미 국무부 내 극동국 관리들이 대부분 한국, 일본, 중국을 경유하며 경력을 쌓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 해당 시기 미 국무부의 주된 관심이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전략의 구축이었기 때문에 동경대사관 문서는 서울대사관 문서와 마찬가지로 해당시기 한국 상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525년(법흥왕 12)에는 2경(京) 5주(州)의 하나인 상주(上州)로 개칭하였으며, 757년(경덕왕 16) 오늘날의 명칭인 상주(尙州)로 고쳐졌다. 경주이씨 양월문중은 15세기 세조때에 경주에 입향한 이후 줄곧 세거하던 집안으로 景漢(號:淸窩, 1560-1650), 尙一(호:愛日堂, 1585-1634), 耈徵(號:竹軒, 1609-1688)의 3代 때 크게 번성하였다. 복원된 향교에는 大成殿, 明倫堂, 東西齋, 風化樓, 景德祠, 慕賢亭 등을 갖추고 있다.

그는 대과에 급제한 이후 상경하여 南署 會賢坊 會洞契 會洞에서 거주하다가 1913년 8월 18일(음력)에 작고하였다. 이 말은 그가 宗家를 위해 자신의 전답을 희사하고 가난한 자들을 많이 도운 데서 비롯된 것으로 전하는데, 이를 보면 그는 상당한 재력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鄕案은 칠원현 읍지의 부록으로 전하는데, 1618년 윤4월 20일에 중수된 향안에는 당시까지의 향안을 모아 한꺼번에 필사한 것으로 모두 97명이 등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은 웨드마이어( 대구오피 . Wedemeyer) 사절단 문서인데, 맨 앞의 숫자 55는 1955년 현역서가에서 퇴장된 것을 의미하며, D는 국무부(Department)의 약자로 국무부서가를 뜻하며, 마지막 150이란 숫자는 1955년에 150번째로 퇴장된 문서라는 뜻이다. 1787)은 宋明欽과 愼守彛의 문하에서 수학하기도 하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면 당시 변씨 가는 親老論적인 성향을 지녔던 것으로 생각된다. 17세기 말 宋時烈과 尹拯을 중심으로 야기된 노소론 분기의 시말을 서술한 책으로 송시열을 옹호하며 윤증 일파를 스승을 죽음으로 내모는 패륜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폄하하였다. Lot File은 말 그대로 한 덩어리로 묶여진 자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등이 있다. ID file은 정보문서를 뜻하며 P file은 간행된 출간자료를 의미한다. 1949년 시기, 한국관련 부분의 가장 주된 자료가 된 740.00119 control(Korea)시리즈는 남한주둔 미24군 사령관, 정치고문 등과 동경의 SCAP, 국무부, 육군성 등이 주고받은 1차 자료를 담고 있으며, 마이크로필름화 되어 있다.

의 230여 상자, “미8군 부관부 비밀서한철 1947-53년(Ent No. A1 133, ARC Identifier 566564)”의 201개 상자 “미8군 부관부, 포상관련문서철 1950-53년(Ent no. A1 159, ARC Identifier 567310)”의 170여 상자 “미8군 군사과, 미8군 사령부 보고서, 1950-52년(Ent no. A1 234, ARC Identifier 571153)”의 160여 상자 등이 있다. 미8군 군사과, 최고사령관 서한, 1951년(Ent no. 특징적인 몇 가지 문서들을 살펴보면 가 수장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1941년부터 1947년까지 한국과 관련된 20여 종의 기록과 UNRRA, Lend-Lease에 관한 회고록, 서한, 기록 사본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대사관 문서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RG 59의 미국무부 일반문서와 비교할 때 주요 사안· 수납한 문서로 RG 59 미국무부 일반 문서에 비해, 해당국가 혹은 현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보다 생생한 자료들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RG 84는 해당국가·지역의 공관이 생산· RG313 문서군은 군사수송지원부대 등 12개의 부대가 생산한 기록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1940-1949년을 포괄하는 남한 내정과 관련된 32개 상자의 문서(훈령, 전문, 비망록 등)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가 들여온 RG 338문서는 RG 338에 속한 모든 주한미군관련 문서들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